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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도는데도 내가 어지럽지 않은 이유는, 지구가 아주 커다랗기 때문이란다. 그럼, 커다란 시련이 습격해도 내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마음이 아주 커다래지면 되겠구나! 스팸 퇴치! Click Here! 주의사항 모든 글은 무단펌, 무단도용을 금합니다. 정식으로 덧글+인용이나 트랙백은 허용합니다.이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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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9일
기호에 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더라도 힘든 세월의 질곡을 이겨온 이상 만화계에서는 이미 거장으로 불리우는 황미나 씨의 작품. 그러나 표지서부터 드러나듯 이 작품은 황미나씨의 초기 작품으로, 지금의 황미나 씨 만화와는 다소 이질감이 있는 전형적인 순정형 그림체이기 때문에, 사다드와 필라르의 처절함 교감이 읽는 이로 하여금 통곡하게 했던 '레드 문'이나 긴 장발 냉미남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 가려져 다소 매니악한 사람들 이외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스토리도 군데군데 이가 빠진 듯이 엉성하고, 장면과 장면을 잇는 연결이 지금의 황미나 씨 작품의 연출과 비교해 놓으면 초기작이라는 느낌이 명확히 드러난다. 전형적인 제본소 순정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남자들의 경우는 지금 현재 남녀를 무리없이 수용하고 있는 황미나 씨의 작품과 비교하여 다소 어색한 감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대작'레드 문'만큼이나 마지막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시대극의 웅장함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마지막까지 눈물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던 어린날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리라.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이 작품을 황미나 씨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내 인생에 영향력을 미친 작품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도, 앞으로도. 다키아라는 나라의 아름다운 다섯 젊은이가 나라를 잃고 뿔뿔히 흩어져 각자 맡게 되는 비극... 으로 의뢰로 추려보면 간단히 추려질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하지만 그 간단한 줄거리 안에는 아무리 되풀이 되어도 모자랄 아픔의 공식이 있다. '나라를 잃었다=갈 곳을 잃었다=존재의 위협'이라는 공식이. 나라 없는 설움이라는 사실은 여느 이야기가 다 그렇듯 이들의 행동의 전반에 걸쳐 덫을 놓는다. 그로 인해서 이들이 겪는 일들이 - 사랑, 우정, 끝에 가서는 생명에 이르기까지 - 얼마나 시작부터 힘들어지는지 아름다운 그림은 생각 이상의 냉혹함으로 눈물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더욱더 이 작품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서 보여지는 모든 비극에 탕인은 있을지언정 악역은 없다는 것. 환부 없는 상처가 더 고치기 힘들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키아라는 작지만 평화로웠던 자신의 나라에서 차곡차곡 쌓았던 아름다운 시절을 도저히 잊지 못하면서도, 그래서 끊임없이 재기를 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원수를 사랑하고 말았던 왕자 에로우스와 그의 동생이자, 다키아의 왕녀 아르벨라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로마의 잔학함. 로마의 냉혹함. 그러나 그 속에서도, 탁한 연못물 위로 피어나는 연꽃같이 아름다운 인정이 살아 숨쉰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이들의 재기는 활차지 못하고 순간 순간의 그리움으로 터무니없이 늦춰진다. 아름다운 달맞이 꽃 언덕을 되찾기 위해서 나선 길이건만, 결국 더이상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의 달맞이 꽃 언덕을 그리는 이들의 마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린 다키아의 젊은이들은, 각자의 사랑을 종착점으로 처절하게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어렸던 나를 더욱 더 울려버리고 말았던 것은, 그렇게 비극인 줄 알면서도 이들이 끝까지 웃었다는 것이다. 그 공포의 순간까지도 채 빼앗아가지 못했던 이들의 그리움과 미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 기독교도들은 전부 사자밥으로 만들었던 그때, 스스로 기독교도가 되었던 왕녀 아르벨라는 이 순간부터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또 그 주를 따라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로마 군대에 몰려 쓸쓸히 절벽 위에서 한 떨기 꽃으로 떨어져버린 아르벨라와 아르벨라의 연인이자 로마의 사령관이었던 마커스, 그리고 로마의 공주 율리아와 다키아의 왕자 에로우스, 달맞이 꽃 언덕의 벗이었던 헤레나, 라파엘, 스테파노.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님을 영원히 바다에서 그리고 말 카디나, 이 모든 것을 조명하며 이들의 산증인 역할을 한 노부인 베아트리체까지, 각자의 운명에 사무치게 맞서다 웃으며 사라져간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아뉴스데이 Agnus Dei - 주의 어린 양(라틴어) - 이다. 마지막에 맞추어진 퍼즐처럼 이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더이상 없을 정도로 등장 인물들 - 내가 탐탁치 않게 여겼던 제본소 만화의 왕눈을 가진 순정형 캐릭터들 - 에게 애정이 솟아올랐다. 나에게 이들이 보여준 용기가, 꿈이, 끝까지 놓지 않고서 가져갔던 한 줄기 그리움이 눈에 여전히 밟혀서. 시작의 어려움이 이렇게 컸는데, 끝맺을 때의 어려움이야 오죽이나 컸겠으랴. 어려서부터 유난히 어떤 작품을 접하든 단조로운 침묵 안에서도 꺽꺽 잘 울었던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도 꺽꺽 울었다. 울고서 생각했다. 나도 이런 미소를 갖자. 최악의 비극 안에서도 거짓 껍부리라고 욕먹을 지언정 웃으면서 가자. 대신 이들처럼 촐연히 사라지지 말고 지금 이 감동을 가지고 그리움을 내일로 쌓자. 꼬맹이 치고는 참 맹랑했다. 그래도, 그렇게 처음으로 맹랑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직도 내 어린 시절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던 그 추억이 남아있는 이상, 나에게 아뉴스데이는 수많은 명저와 졸저들이 범람하는 현대에서도 여전히,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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